이식 못할 죽은 폐, 돼지가 되살린다

미 연구진 손상된 폐를 돼지에 연결해 소생 성공

돼지로 손상된 사람 폐를 이식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소생시키는 실험이 성공했다./shutterstock

환자에게 이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된 폐를 돼지가 소생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의료계는 수술이 가능한 폐의 수를 두 배만 늘려도 이식 수술 대기자가 사라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코다나 분작-노바코비치 교수 연구진은 1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이식 수술이 힘들 정도로 손상된 사람 폐를 돼지의 순환계에 연결해 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돼지 도움받아 몸 밖에서 폐 소생

폐 손상이 심각하면 의료진은 최후의 수단으로 폐 이식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식용 장기를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어렵게 확보해도 이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경우가 많다. 미국 폐 협회에 따르면 기증받은 폐 중 실제 이식 수술에 쓰이는 것은 28%에 불과하다.

노바코비치 교수 연구진은 기존의 폐 소생 기술을 발전시켰다. 현재 병원에서는 기증받은 폐에 기계 장치를 연결하고 산소와 체액을 인위적으로 공급해 소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소생이 힘든 경우가 많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돼지의 순환계에 연결돼 혈액을 공급받은 사람 폐가 24시간이 지나자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Nature

그렇다면 기계 장치 대신 살아있는 동물이 이식용 폐에 영영분을 공급하면 어떨까. 연구진은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검증했다. 실험은 이식 수술을 위해 기증받은 폐로 진행했다. 모두 기계 장치로 소생을 시도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폐기될 상태였다. 이미 적출 수술을 하고 나서 몸 밖에서 24시간이나 지난 폐도 있었다.

연구진은 이식용 폐를 마취한 돼지의 순환계에 24시간 동안 연결했다. 돼지 목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혈액이 폐로 전달됐다. 동시에 폐에 인공호흡장치도 연결해 산소를 공급했다. 또 면역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도 투여했다.

실험 결과 폐는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 실험 전에 폐는 이미 상당 부분이 하얗게 변색된 상태였다. 조직이 죽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손상됐던 폐 조직과 세포는 돼지로부터 24시간 동안 혈액을 공급받고 나서 이제 정상적으로 산소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적출 수술을 한 지 거의 이틀이 지난 폐도 회복됐다. 돼지는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환자 스스로 이식용 폐 되살리는 게 목표”

노바코비치 교수는 “폐가 100% 정상은 아니지만 근접한 상태”라며 “지금도 환자에 이식하기에 충분해 보이지만 그전에 더 많은 실험을 반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폐 소생에 병원체 감염 우려가 없는 무균(無菌) 돼지를 이용할 계획이다. 그렇게 해도 돼지 세포가 폐로 전달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이 폐를 사람에 이식하면 면역세포들이 외부 침입자로 오인해 공격한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앞으로 돼지 대신 환자가 직접 이식용 폐를 몸밖에서 소생시키고 자신의 몸에 이식하는 단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미 컬럼비아대

면역 거부 반응을 막으려면 결국 돼지 대신 사람이 장기 소생에 참여해야 한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을 환자가 직접 자신의 혈액으로 몸 밖에 있는 이식용 폐를 소생시키는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바코비치 교수는 “만약 체외 생체 소생법으로 이식 수술이 불가능하던 폐 4개 중 2개만 소생시키면 이식 가능한 폐의 수가 3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문의 공동 교신 저자인 반더빌트대의 매튜 바체타 교수도 “기증받은 폐 가운데 실제 이식 수술에 쓰이는 비율이 지금보다 두 배인 40%만 돼도 폐 이식 대기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ywlee@chosun.com]